특집 밀레니엄 130선-0

     

     다게레오타입 카메라 (연대미상)

    <밀레니엄 특집, 역사적인 카메라 130선>은 월간 카메라 전문지 포토넷(Photonet) 10월호에 게재된 전문(全文)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日本カメラ社 」의 「카메라 연감 2000」의 <20세기의 명기 100선>을 기초로 하여 사진술의 발달 이후 누락된 초기의 카메라와 최근의 첨단 제품을 업데이트한 것으로 마치 카메라 160년의 역사를 응축해 놓은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본 사이트의 <역사적인 카메라>의 개정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생생한 사진자료와 맥맥히 흐르는 카메라의 역사성을 보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카메라에 얼마나 천재적인 사람들의 예지가 응축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카메라의 세계를 즐겨 보십시오.

     

     

    『 새로운 세기를 맞아 1839년 다게레오타입 사진술이 발표된 후 지난 세기동안 카메라의 발달을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17C초 핀홀 원리의 가장 단순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la)를 화가들은 애용하였다. 19C초에는 윌리엄 탤벗(1800∼1877)과 같은 사람들이 가장 단순한 카메라로 찍이스트먼의 브로니 카메라  1900년은 최초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금속판을 사용한 다게레오타입 카메라가 상업적으로 발표되고 난 후, 종이대지를 사용한 프레드릭 스콧 아처(1813∼1857)의 칼로타입(Calotype) 처리법에는 콜로디온(Collodion) 유제를 사용한 습식과 건식 건판이 사용되었다. 리처드 리치 매독스(1816∼1902)의 젤라틴 건판 처리법(Gelatin dry-plate process)이 콜로디온을 구식으로 만들어버렸다. 마침내 1880년 조지 이스트먼의 롤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로 발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왔다. 그러나 카메라의 진정한 발달은 롤필름의 개발과 함께 1889년 이스트먼의 "코닥" 카메라 이후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1900년 이스트먼의 사업적 예지로 어린이용의 "브로니 카메라"가 발표되고 손에 들고 오스카 바르나크의 우르 라이카  1913년찍어도 좋을 만큼의 빠른 렌즈의 개발이 핸드 카메라의 개발을 부추겼다. 카메라와 유제의 만남은 분명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두 개의 평행선이 역사의 한 시점에서 필연처럼 만난 것이다. 새로운 규격의 필름이 발표될 때마다 새로운 유형의 카메라가 천재적인 예지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 개발되고 주변사람들을 매료시켰다. 20C는 과연 카메라의 전성기라고 할 만하다. 그 만큼 능력있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카메라가 고안되고 여러 분야에 적용되어 왔다. 지금은 사양화되었지만 1860년대에서 20C 초반까지 스테레오 카메라는 요즘의 영화만큼이나최초의 SLR,  키네 엑잭타  1936년 인기있는 품목이고 기호품이었다. 아직도 복고풍의 카메라제작자들에 의해 제작되고 수집된다. 롤필름이 개발되고 난 후 스테레오 카메라는 더욱 융성하게 발달하고 메커니즘은 일안 반사식 카메라보다 정교해지게 되었다. 단체사진이나 풍경에 매료된 사람들은 눈의 시야만큼이나 넓은 사진을 보고 싶어했다. 카메라의 한계적 부피 때문에 카메라를 돌리거나 렌즈를 회전시켜야만 했다. 결국에는 눈의 시야만큼이나 넓은 광각렌즈 카메라를 개발하거나 물고기의 눈의 화각에서 착안한 어안렌즈로 구름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사진이 대중화될수록 카메라는 소형화에로의 도전을 받았다. 1912년 이스트먼 코닥의 베스트 포켓 코닥(VPK)는 당시로서 4x6.5cm 화면으로 촬영하는 획기적인 소형의 폴딩 카메라였다. 1925년 현대 카메라의 선조격인 독일의 천재적인 기계설계자 오스카 바르나크의 라이카를 에른스트 라이츠는 현실화시켜 주광장전용 파트로네타입의 폴라로이드 랜드95  1948년35mm 필름으로 우리에게 「작은 네가티브, 큰 사진」을 가져다 주었다. 에드윈 랜드 박사의 딸은 「왜 사진은 즉석에서 볼 수 없을까?」하고 의아해 했다. 몇 년 후 1948년 그는 세피아톤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딸에게 선물했다.
    사람들은 작은 필름으로도 선명한 사진을 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문제점은 남아 있었다. 크고 선명한 사진을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브로니필름은 여전히 인기가 있었다. 35mm 카메라의 소형화, 자동화와 더불어 중형포맷 카메라는 꾸준히 전문가와 고급 아마추어들에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일부 수중사진가와 우주인들은 자기들만의 고품질 카메라를 요구했다. 니콘과 핫셀블라드는 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1963년 니코노스 I와 1966년 핫셀블라드 SWC 우주용 카메라로 그들에게 응답했다.
    니코노스 RS  1992년오스카 바르나크의 컨셉트에서 나아가 세계각국의 사람들은 "하나의 필름으로 다양한 사진"을 요구하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사진 시스템(APS)의 카메라가 채택되고 전자의 발달로 하드한 영상보다 소프트한 영상을 선호하는 부류가 증가함에 따라 사진영상을 즉석에서 보고 압축, 전송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과연 은염 유제사진은  디지털 카메라의 발달로 그 종말을 고하는 것일까? 여기 그 카메라 역사의 진화과정을 보고 그 해답을 예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감히 지나온 발자취를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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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탤벗의 "쥐덧" 카메라001  탤벗의 "쥐덧" 카메라
    ■ 1835년. 탤벗이 실험에 사용한 소형 카메라. 사진발명의 실험시대에 윌리엄 탤벗(William H.F. Talbot)은 몇 개의 소형카메라를 스스로 만들었다. 탤벗의 부인이 신기하게도 "쥐덧(mouse trap)"이라고 이름 붙인 가로, 세로 6cm의 조그만 카메라였다. 심플렌즈가 붙은 황동튜브가 전면에 있는 구멍 속으로 움직이고 카메라 뒷판에 감광지를 붙이거나 핀으로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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