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6년
콤파스나 사분호(四分弧)자 같은 과학기구를 제작하던 요한 크리스토프
포익틀렌더(Johann Christoph Voigtländer)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의 아들 요한 프리드리히(Johann Friedrich)가 사업을 이어받아
안경, 망원경, 오페라글라스 등을 추가시켰다. 설립자의 손자인
페터 빌헬름 프리드리히 포익틀랜더(Peter Wilhelm Friedrich Voigtländer)는
수학자 페츠발(Petzval)과 동업하여 1840년 수학적으로 계산된 렌즈를
설계했다. 그것을 f3.7이란 믿을 수 없는 빠른 렌즈였다. 또한 포익틀렌더는
그 렌즈를 사용하는 믿을 수 없는 카메라를 디자인했다. 그 카메라는
최초로 전부 금속으로 제작되었고 랙과 피니언(rack & pinion)을
사용하였다. 1849년 회사는 브라운슈바이크로 옮겨졌다. 세기의
전환점에서 헬리아(Heliar) f4.5 렌즈가 개발되었다. 이것은 최초의
대구경(大口徑) 애노스티그매트렌즈였다. 1960년대 당시에 카메라생산은
회사의 주요한 사업이었다. 1950년대초 짜이스 이콘이 포익틀렌더의
주(株)를 사들이기 시작하여 1960대 중엽 완전히 소유하게 되었다.
짜이스 이콘은 우수한 광학렌즈 설계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몇몇 카메라들은 짜이스-포익틀렌더 이름을 가졌고 짜이스
이콘 카메라의 후속모델에 포익틀렌더의 영향을 미친게 분명했다.
1972년 짜이스 이콘은 포익틀렌더를 롤라이에게 팔았다. 이 시기에
짜이스 이카렉스(Icarex)와 포익틀렌더 VSL-1, 롤라이 SL35와 유사한
후속모델 VSL-2가 동일한 카메라였다. 초기의 포익틀렌더의 연구와
디자인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모델들이 계속 나타났다.
그중에는 인기리에 성공한 롤라이 SL2000 이 포함되어 있다. 포익틀렌더라는
이름은 결국 카메라 체인점에 팔리고 전세계에서 수입되는 여러가지
사진관련제품의 브랜드로 나타났다. 그런데 1999년 포익틀렌더는
베사-L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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