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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게레오타입 카메라|칼로타입
카메라|습판 카메라|건판 카메라|
카메라 옵스큐라
(Camera Obscu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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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과학적인 발명은
감광재료의 형성(形成)이다. 이것으로부터 감광재료를
카메라에 도입하는 만족스러운 방법에 대한 발명이
뒤따랐다. 카메라는 하나의 기구로 앞서 말한 감광재료,
즉 사진적 재료의 발명에 따라 진화(進化)되어 왔다.
감광재료를 카메라에 도입한 방법에 대한 원칙적 발명은
그것을 지니고 있는 베이스재질에 의하여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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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법으로 일련(一連)의 정의된 단계를
따를 수 있다. 카메라 옵스큐라(暗箱子)를 시작으로
포토그램(photogram; 빛에 의한 그림)화법에 의하여
만들어진 상을 따라 한 장의 반투명 용지 위에 그림을
그렸다. 우리가 가지게 되는 첫번째 충격은 트래싱지(tracing
paper-透寫紙)를 대체하는 감광면(light-sensitive
surface)의 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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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진진화의 첫번째 순서이다. 감광재료의
베이스재질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타입의 카메라가
뒤따랐다. 감광재, 은염(silver salt), 요오드화물(iodide),
브롬화물(bromide)이 금속은(金屬銀)으로의 변화는
현재의 완벽한 상태로 천천히 혁신되었으나 기본적으로
거의 변하지 않았고 카메라디자인의 변화에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 못하였다. 카메라 옵스큐라로 돌아가서,
이것은 15세기경에 실용적인 렌즈의 발명에 의해 완전한
단계로 발전하였다. 이어서 카메라는 중요한 기구가
되었고 18세기 고전적 고고학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란 격언은
특히 나타나는 여러가지면에서 볼 때 이 시대에서 유래되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렌즈와 거울, 그리고 한 장의 트래싱지를
대체한 유리판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와 손을 검은
천 속에 집어 넣고 이미지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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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판(metal surface)--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에서
사용
- 종이대지(paper base)--칼로(Calotype)타입에서
사용
- 유리판(glass plate)--콜로디온
유제사진에서 사용
- 셀루로이드 필름(celluloid
film)--젤라틴(gellatin)유제사진에서 사용
- 롤 필름(roll film)
- 영화(cinematograph)용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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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게레오타입
카메라 |
프랑스인
화가인 다게르(Lewis Jacque Mande Daguerr)와 과학자인
니엡스(Joseph Nic phore Niépce)의 공동연구
결과, 1839년 8월 19일 파리의 프랑스 학사원(學士院)의
아라고(Francois Dominique Arago)에 공개된 은판사진(銀板寫眞)
촬영용 카메라. 은도금한 동판에 요오드증기로 요오드화은을
만들어 카메라로 노광(露光)시켜서 수은증기로 현상하고
하이포로 정착시키는 방법으로 당시의 노출시간은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렸다. |
다게레오타입의
사진은 보는 각도에 따라 음화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은화합물의 침전물에 의한
반사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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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움직이는 피사체의 경우는 촬영이
불가능하고 인물이라도 의자에 앉아 머리를 지지하는
기구로 지탱하여 움직이지 않도록 해서 촬영했다. 나중에는
요오드화은에 취소(臭素 bromine)가스를 쐬여 감광판의
감도를 높히는 동시에 빠른 렌즈라고 불리우는 밝은
렌즈도 개발되어 노출시간은 1∼2분 정도로 짧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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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엡스의 감광은판의 발명으로 포익틀렌드(Voigtländer)사는
즉시 새로운 용도에 맞는 카메라를 재디자인했다. 따라서
사진적 초상화(portraiture-by-photography)가 가능했다.
기술적으로 이것은 거울을 없애고 카메라 옵스큐라의
정상적인 초점거리를 줄이고, 작은 이미지를 투사시키고
건판위에 떨어지는 빛의 양(量)을 증가시켜 실용적인
범위에서 노출을 짧게 함으로써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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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게레오타입 사용자들은 카메라와 스탠드
외에도 요오드 증기박스, 수은 증기박스, 알코홀 램프,
무두질한 가죽, 건판 보관용 상자, 수많은 화공약병과
접시를 준비해야만 했다. 전시용 대형 다게레오타입
건판은 매우 고가였다. 1840년대 런던에서 12장짜리
한 박스에 5기니(영국의 옛통화로 21실링, 약 1.05파운드에
해당)였다. 드니든에 사는 쇼는 그의 다게레오타입
인물사진을 1 내지 4 기니 들었는데 크기는 3×2인치이거나
보다 작았다. 포익틀렌드의 다게레오타입 부품으로서
직경 9cm의 원형건판이 뉴질랜드에서 발견되었다. 보익틀랜드
카메라와 유사한 토마스 데이빗슨(Thomas Davidson)타입도
역시 동일하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그리녹에서 만들어진
것은 사각형이다. 다게레오타입 건판은 피사체가 특별히
주어진 노출시간에 제한이 없는 경우에 칼로타입(Calotype)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형태의 목재카메라로도 촬영할
수 있었다. 장초점 다게레오타입 렌즈는 레레버스(Lerebours)가
또 하나는 발렌틴(Valentin)이 만들었는데 둘다 12인치(약300mm)
초점거리로 1840년초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다게레오타입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후기의 다게레오타입에서
반사거울이 가끔 다시 채택되었는데 초점조절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지 건판의 상을 세우기 위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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